초로기치매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환자가 해마다 증가하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그 심각성이 크게 대두되지 않았고 지원도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초로기치매는 65세 이하 환자에게서 나타나는 치매를 말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11년 6만3794건이었던 초로기치매 건강보험청구건수는 2015년 8만497건으로 약 26% 증가했다. 대한치매학회 역시 전체 치매 환자 가운데 20%가 65세 미만인 것으로 보고 있다.

초로기치매는 노인치매보다도 사회적 문제가 크다는 게 의료계의 중론. 사회활동이 가장 왕성한 40~50대에 이 질환이 나타나면 자칫 가정경제가 붕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김희진 교수는 “초로기치매로 업무능력이 떨어진 중장년층은 직장생활이 불가능하다”며 “가장이 치매를 앓게 되면 수입이 끊길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중앙치매센터 김기웅 센터장 역시 “중장년층 치매 환자와 가족들은 65세 이상 환자보다 경제적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큰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박경희 씨(43·여)는 몇 년 전부터 치매를 앓는 남편을 돌보고 있다. 업무수행이 불가능해 퇴사한 남편은 경제능력이 전무한 상태. 가정이 경제적으로 타격받자 전업주부였던 박씨가 재취업하며 사실상 가장이 됐다. 이로 인한 생활의 변화는 그를 힘들게 만들고 있다.

사춘기를 겪는 아들은 갑자기 바뀐 아버지에게 충격을 받아 대화를 끊었고 학교까지 겉돌고 있다. 박씨도 경제활동과 병간호를 병행하며 심신이 지친 지 오래다. 하지만 그를 가장 힘들게 만드는 건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절망감. 그는 “기약 없는 미래가 까마득하기만 하다”며 “최근에는 우울증까지 겹쳐 견딜 수가 없다”고 호소했다.

‘기억력 감퇴’만이 치매증상은 아냐

치매는 알츠하이머병으로 인해 가장 많이 발생한다. 특히 초로기 알츠하이머치매는 뇌단백질 ‘베타아밀로이드’ 생성에 관여하는 유전자 PSEN1, PSEN2, APP 중 1개 이상이 돌연변이화할 때 나타난다. 유전력이 강한 만큼 부모로부터 변이를 물려받은 자녀는 비슷한 나이에 무조건 초로기치매를 앓게 된다.

유전자변이를 물려받은 사실을 미리 발견했다면 치료계획을 사전에 세울 수 있다. 문제는 검사로 이를 발견하지 못했을 때 자가검진만으로 발생여부를 파악하기 힘들다는 점. 보통 기억력이 감퇴했을 때만 알츠하이머치매를 걱정하기 때문이다.

대한치매학회 김상윤 이사장은 “보통 알츠하이머병과 치매를 동일하게 보는 경향이 있는데 이 둘은 엄연히 다른 질환”이라며 “이 병은 뇌가 퇴화해 기억력, 인지기능이 떨어진 상태로 치매증상의 하나인 셈”이라고 말했다.

일상생활에서 인지능력이 크게 떨어지거나 갑자기 이상행동을 보이는 것도 알츠하이머치매 증상 중 하나다. 그런데도 기억력은 정상인 경우가 심심찮다. 초로기치매는 노인치매와 달리 전형적인 증상이 드물고 진행속도가 빨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상태가 심각해질 수 있다.

아직 넘을 산 많은 초로기치매 지원책

이에 대해 김기웅 센터장은 “현행법상 초로기치매 문제를 완벽히 해결할 수 없지만 다양한 지원방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국내 초로기치매 지원은 3차에 걸친 치매관리종합계획에 따라 개선되고 있다. 65세 이전에 치매판정을 받았다면 고령환자와 동등하게 정부지원을 받을 수 있다. 이로 인해 퇴사할 경우 실업급여 대상자로 지정되며 보호자가족은 환자 1명당 200만원의 인적소득공제를 적용받는다. 장기요양보험, 요양비지출, 건강보험 의료비지출도 세액공제가 가능하다.

그는 “진료약제비 실비를 월 3만원 이내로 지원하는 ‘치매진료 약제비 지원사업’을 받은 환자 가운데 65세 미만 환자가 많다”며 “60~65세 환자는 보건소에서 무료치료를 받을 수 있는 데 보건소장의 판단에 따라 젊은 환자도 동일하게 검사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초로기치매에 대한 지원이 아직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김상윤 이사장은 “초로기치매로 인해 자녀교육에 차질이 생겼다면 해당 가정에 교육비를 지원하는 등 환자와 가족에 대한 전반적인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며 “어린 나이에 부모의 치매발병소식을 들은 자식은 큰 충격을 받은 나머지 가족과 갈등을 빚기도 한다”고 말했다.

보호자를 대상으로 한 질병관리교육도 중요한 지원책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이와 관련해 미국은 ‘보호자 실용지식 프로그램’(Savvy Caregiver Program)을 통해 6주, 총 12시간에 걸쳐 보호자를 대상으로 환자간호, 스트레스관리 등을 위한 지식·태도·기술을 가르친다.

김상윤 이사장은 “미국에서는 이런 교육을 받은 자녀, 손자가 부모와 조부모를 돌보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치매시설입소 역시 문제로 지적된다. 이와 관련해 보건복지부 노인정책과 김민주 사무관은 “2014년부터 치매특별등급을 신설, 요양필요점수가 높지 않은 초로기치매 환자도 노인장기요양급여를 통해 방문간호, 시설입소 등을 혜택 받을 수 있다”며 “시설입소는 연령이 아니라 질환상태에 따라 결정되는 게 타당하다”고 말했다.

다만 이전까지 초로기치매 환자에 대한 장기요양보험이 드물게 적용돼 이들의 시설입소가 어려웠다. 그만큼 이들을 위한 요양환경 수준이 아직 미흡해 생활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한 치매센터 관계자는 “아직 치매관련시설에서 초로기치매 환자가 생활하기에는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게 사실”이라며 “현재로써 이들은 가정에서 생활하는 게 되레 수월한 상황”이라고 털어놓았다.

이와 관련해 김기웅 센터장은 “초로기치매 환자를 위한 주간보호서비스 개발 등 단계적으로 보완이 필요한 부분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나라 관련 지원책은 아직 갈 길이 멀다는 평가다. 김상윤 이사장은 “미국 국립노화연구소처럼 초로기치매는 물론 치매정책 개발과 관련 연구를 총괄할 수 있는 콘트롤타워가 개설돼야 한다”며 “1차 기관에서 초로기치매 증상이 뚜렷하게 발견됐다면 상급병원으로 안내하는 등 보다 체계적인 전달시스템이 확립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헬스경향 신민우 기자<br>